전시 상세
Background Frame for Exhibition Poster,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Exhibition Poster for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Where Does the White Go When the Snow Melts)

전시서문 Exhibition Foreword

시간은 그림과 같아, 반은 물이 그리고 반은 내가 그린

봄이 시작된 요즘, 유독 연두 빛이 눈에 들어온다. 흰빛의 눈이 녹은 뒤 나타난 빛깔이다. 빛의 변화는 시간을 만들었고, 모든 생명과 자연은 빛으로 인해 변화한다. 시각예술은 빛과 시간, 자연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 창작의 태도와 방향 또한 이 인식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연을 통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작업은 삶의 깊이를 드러내고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예술적 창작과 삶의 외연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삶과 예술의 조화와 균형은 세상과 나와의 관계,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존재, 본질의 문제가 된다.

자연은 작가 김지현의 삶의 시공간 속에서, 고민의 방향과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다. 발견하고 관찰한 자연의 현상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문학과 시에 담긴 생태적 감수성은 자연과 환경을 품고 사는 마음을 환기시키며 그림을 그리는 의미와 삶의 가치에 질문을 보태었다.

회화는 보이지 않는 본질을 재현해 내는 일이다. 형태 없음의 형상,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 나는 그것을 발굴하는 자세로, 녹아 사라지지 않고 흰빛이 끝내 도달한 자리, 그 지속의 증거를 그린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풀의 숨결, 돌봄 없이도 자라나는 생명의 기세, 경계를 넘는 서식의 습관들. 그것들은 언제나 언어의 바깥에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선다. 풍경의 경계,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이 잠시 형상을 빌려 남긴 흔적을 따라 조용히 어슬렁거린다. 언어에 닿지 않는 생명의 기척, 말보다 먼저 도착한 감각을 따라가며 나는 그것을 표면 위에 남긴다. 회화는 그 누락된 자리를 응시하는 일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작가가 맞닥뜨린 언저리의 풍경은 시작과 끝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다양한 시간이 머물고 생태순환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로, 가시적 영역 너머의 내면으로 눈이 적응하기 시작하면 생명력이 넘치는 미묘한 세계가 펼쳐졌다. 자연현상 속에서 시공간의 경계는 순환의 정점을 이룬다. 순간적인 생동과 활기가 치솟고 동시에 사그라드는 양가적인 가치가 공존하기에 오묘하고 신비롭다. 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다면적인 형상과 다양한 질감에 시각은 빠져든다. 어둠이 내린 숲,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지만 작은 차이에도 오감이 예민해지는 시간이다. 빛에 반응하는 작은 몸짓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색다른 형상을 띤 유기체, 윤곽을 무너뜨리는 역광, 녹아내리는 눈, 허물어지는 흙, 모든 장면들은 빠른 순간에 긴 응축의 시간이 담겨있다.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의 흔적, 생장과 소멸이 발생하는 곳에서 작가는 자연의 형태 없는 형상에 감성을 입히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순간들을 그림이라는 물질로 기록한다.

흰빛의 캔버스 표면에 좋아하는 감각과 대상, 자아가 조응하며 회화적 제스처로 재해석된다. 발현된 심상은 대상에 대한 시선의 거리와 몰입의 정도를 되묻는다. 보이는 대상의 그리기(재현)를 멈추고 그 대상의 본질을 찾는 행위로 일체의 시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오감을 일깨우는 붓질에는 빠른 시간과 느린 시간이 공존한다. 기억하며, 채우고, 지웠다가, 기다리고, 생각하며 머무는 시간이 거듭된다. 친밀한 거리에서 세심한 눈길이 가닿은 곳으로부터 역동적인 다채로움에 이끌렸던 풍경까지 여러 감정의 추이를 떠올린다. 대상을 온전히 느끼고 교감할 수 있도록 감각의 크고 작은 정도가 회화의 몸짓이 되어 다양한 붓질과 톤으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시점과 구도, 색채, 붓질, 이 모든 조형적 언어가 축적된 작가의 시간과 공간을 드러낸다. 이입된 감각들, 감응이 불러일으킨 의미까지 회화와 기억 속의 시공간이 하나로 얽히며, 회화적 시공간은 영원히 지속된다.

물은 계속 흐르고, 얼음은 녹고,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렇게 연결되고 생성과 성장, 소멸을 거쳐 순환한다. 풍경 속 개입은 그곳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몸의 움직임, 감각들, 내가 보낸 시간을 담고 있다. 작가는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변주를 즐겼고, 공기와 바람. 온도와 습도, 흙과 물, 풀 내음을 맡고, 소리를 들으며 그 장소는 상황이 되어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어찌 보면 자연 속에서 나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 쉼 없이 걸어온 시간들이다. 자연과 빛은 시간의 흐름 속에 미약한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흔적을 남긴다. 반은 존재 그대로의 고유함으로, 반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미세한 손길로 이 흔적들은 그림이 되었다. 자연은 어쩌면 말 없는 삶의 거울이었다.

아이슬랜드 시인, 스타인 스타인나르(Steinn Steinarr, 1908-1958)의 시집 (1948)에 수록된 시 "Time and Water" 중에서 인용.

황신원 / 사루비아 큐레이터

위 내용은 전시 소개 자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The above is an excerpt from the exhibit introduction.

view 01
view 02
view 03
<길은 어떻게 숨어드는가>, 2025, Oil on canvas, 112x145.5cm
view 04
view 05
<마치 뿌리를 대하듯 흙은-구별하지 않는다>, 2025, Oil on canvas, 90x240cm
view 06
view 08
view 09

참여작가

전시공간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Project Space SARUBIA

    • 설립

      1999

    • 구분

      갤러리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지하
      B1, 4, Jahamun-ro 16-gil, Jongno-gu, Seoul

    • 연락처

      phone : 02-733-0440
      fax :
      website :
      email : curator@sarubia.org

    • 운영정보

      ※ 관람시간 수,목,금,토,일요일 12:00 - 19:00 ※ 휴관일 월,화요일 ※ 관람료 무료 ※ 주차 -

    Loading...

전시 (2025)

  1. 1
  2. »